2025년 7월부터 12월까지, 서울 용산에 위치한 리움미술관에서는 세계적인 한국 작가 이우환(Lee Ufan)의 설치미술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전시가 열립니다. 이번 전시는 그의 회화보다는 ‘공간과 물질의 관계’를 다루는 설치미술 중심으로 구성되며, 이우환의 철학이 오롯이 담긴 ‘관계항(Relatum)’ 시리즈를 중심으로 신작과 대표작이 대거 공개될 예정입니다. 조용하지만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이우환의 세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전시입니다.
리움미술관에서 펼쳐지는 ‘관계항’의 세계
리움미술관은 국내외 현대미술 작가들의 전시와 컬렉션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이우환과도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기존에 소개된 회화 중심의 기획전과 달리, ‘설치미술’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최초의 전시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철, 돌, 유리, 모래 등의 자연 재료를 활용해 공간에 배치된 이우환의 설치 작품은 단순히 물질이 아닌 존재와 존재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조형언어입니다. 전시는 리움미술관 M2관 전체를 활용해 총 4개 섹션으로 구성되며, 주요 설치 작품들은 빛, 공기,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감각적으로 변화하는 동적인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대표작 중 하나인 ‘Relatum – the shadow of things’는 커다란 돌과 금속판, 바닥의 음영이 만들어내는 침묵의 구조로, 관람자가 스스로 사유하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이우환이 직접 설치를 감독하고 전시장 구성까지 기획에 참여한 만큼, 작가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공간 연출이 기대됩니다. 관람객은 단지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지나고 머무르며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며, 이는 리움미술관의 미니멀한 공간 구성과 완벽히 맞물려 무심한 듯 깊은 울림을 전하는 현대미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이우환의 설치미술, 관계와 여백의 미학
이우환(1936~)은 ‘관계항(Relatum)’이라는 개념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입니다. 그는 재료 자체가 가진 물성과 그것들이 놓이는 위치, 거리, 방향 등을 조합해 예술의 본질적 의미를 드러내려 했으며, 이는 특히 그의 설치작품에서 극명히 드러납니다. 철판, 돌, 유리 등의 비정형적 재료들은 이우환의 손에서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구조로 탈바꿈합니다. ‘관계항’은 그가 모노하 운동의 흐름 속에서 정립한 개념으로, 작품 자체보다 작품 간의 간격, 재료 간의 관계, 관람자와 공간 사이의 긴장을 강조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런 관계항 설치작업들을 대표하는 초기 작품들과, 최근 10년간 제작된 대형 설치작들이 함께 전시되며, 작가의 조형적 철학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이우환의 설치작품은 보통 미니멀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비우는 것이 예술"이라며, 존재의 본질을 찾는 태도 자체가 작업의 중심임을 밝힌 바 있습니다. 관람객은 그의 작품 앞에서 침묵하고, 멈추고, 사유하게 되며, 이는 단순한 시각 예술을 넘어 존재론적 체험으로 확장됩니다.
전시 감상법과 현대미술 속 이우환의 위치
이우환의 설치미술을 감상할 때 중요한 것은 ‘천천히, 조용히, 멈추며’입니다. 그의 작품은 직관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기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관람 동선도 정적인 흐름을 따라 설계되었으며, 앉아 쉬며 보는 공간, 작품을 빙 둘러 걷는 구조, 빛과 소리의 변화에 민감한 장소가 곳곳에 배치됩니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작품 속에 머무르고 자신의 감각으로 ‘존재하는 것’을 의도한 설계입니다. 이우환은 한국 작가임에도 일본,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먼저 조명받았으며, 그의 설치미술은 미니멀리즘, 모노하, 존재론적 예술사조 등 다양한 흐름과 연결됩니다. 특히 요즘처럼 과잉된 시각 정보 속에서 이우환의 작품은 ‘비워냄의 미학’으로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이번 전시는 그가 그려온 설치미술의 궤적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기회이자, 동시대 관람객에게 조용한 성찰의 시간을 제공하는 전시입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는 이우환 설치작업 워크숍, 작가 철학에 대한 강연, 묵상형 도슨트 프로그램 등이 마련되며, 이우환의 예술을 감각이 아닌 ‘존재의 태도’로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특히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 미니멀리즘을 사랑하는 관람객에게 강력 추천하는 전시입니다.
이우환 설치미술 집중전은 ‘관계’와 ‘존재’를 사유하는 공간이자, 침묵 속에서 더 많은 말을 건네는 예술의 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리움미술관이라는 완벽한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이우환의 세계는, 예술이 감각을 넘어 철학이 되는 순간을 선사합니다. 올여름과 가을, 도시 속 가장 조용한 전시를 만나고 싶다면, 이우환의 공간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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