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봄,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케이이치 타나아미: I AM THE ORIGIN〉 전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팝아트 작가이자, 전방위적 예술가인 케이이치 타나아미(Keiichi Tanaami)의 한국 첫 대규모 개인전입니다. 60여 년간의 예술 세계를 총망라하며 타나아미가 자신의 상상력과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이미지화해왔는지를 회화, 애니메이션, 영상, 설치 등 다양한 형식으로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팝아트와 사이키델릭 문화, 트라우마, 미디어, 동양과 서양의 상징이 혼성적으로 뒤섞인 ‘시각적 대혼란이자 철학적 실험장’입니다.
전쟁의 기억과 환각의 이미지, 케이이치 타나아미의 오리지널리티
케이이치 타나아미는 193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을 어린 시절에 직접 경험한 세대입니다. 그 경험은 평생 그의 작업 세계를 지배해온 핵심 이미지의 원천입니다. 그는 공습의 빛, 불길, 사이렌 소리, 그리고 그로 인한 공포와 불안감을 무의식 속에서 시각화해왔고, 이것이 팝아트와 사이키델릭 아트로 표현되었습니다. 타나아미의 작업은 단순한 예쁜 그림이나 대중적 스타일의 회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면에는 깊은 전쟁의 기억, 혼란스러운 시대상, 그리고 개인적 고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병상에서 본 환각 장면을 토대로 만든 초기 회화 작품과,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하던 시기의 도안, 그리고 1970~80년대 사이키델릭한 색채와 구성을 기반으로 한 콜라주 작품들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왜곡하고 분해하고 재조립하여 감각과 기억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조형 언어를 만들어냅니다. ‘나는 원형이다’라는 전시 제목은, 바로 이런 창작의 방식과 철학을 압축하는 선언입니다. 타나아미는 타인의 영향을 받는 작가가 아니라, 자신의 감각과 기억에서 직접 출발하는 독창적인 예술가임을 강조합니다.
대림미술관: 이미지와 기호의 폭발, 타나아미 월드를 걷다
〈I AM THE ORIGIN〉 전시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공간 전체에 구현된 타나아미의 시각 언어입니다. 전시장은 마치 작가의 내면 세계로 들어가는 거대한 입구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입장과 동시에 방문자는 형형색색의 컬러, 반복되는 상징, 그리고 정체불명의 기호들이 뒤섞인 시각적 폭풍 속에 빠져듭니다. 금붕어, 해골, 눈, 입, 불상, 기계 부품 같은 이미지들은 한 작품 속에서 충돌하며 시각적 과잉의 상태를 연출합니다. 특히 전시 중간에 위치한 360도 영상 공간에서는 타나아미의 애니메이션이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되며, 음악과 조명이 결합된 감각적 몰입 환경을 제공합니다. 관람객은 이곳에서 단순히 영상을 보는 것을 넘어, 이미지의 해체와 재구성 과정에 참여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같은 구성은 타나아미가 말하는 "예술은 혼란을 견디는 힘이다"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실현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팝아트와 일본 오타쿠 문화, 전쟁기억, 서양의 소비주의 아이콘이 마치 기억의 쓰나미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이 전시는, 현대인이 겪는 디지털 시대의 정보 폭주 현상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오리지널리티를 묻는 질문, 관객과 창작자를 잇다
이번 전시는 단지 ‘전설적인 일본 팝아티스트의 회고전’에 머물지 않습니다. 전시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타나아미는 오늘의 관객과 창작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전시를 확장시킵니다. 그는 묻습니다. "당신이 본 첫 이미지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누구의 기억이고, 누구의 감정이었는가?" 타나아미에게 예술은 단지 표현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 무의식이 투영된 시각적 언어입니다. 그는 '복제된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에서 출발하는 창작이야말로 진정한 오리지널리티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전시 마지막 섹션의 체험 공간에서도 이어집니다. 관람객은 디지털 드로잉 키오스크에서 자신만의 얼굴을 타나아미 스타일로 왜곡하여 재구성하거나, 자신의 기억 속 장면을 짧은 드로잉으로 남기는 활동을 통해 ‘이미지의 원천’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또한 굿즈 존에서는 타나아미의 패턴을 응용한 엽서, 포스터, 에코백, 문구류 등이 판매되며, 전시의 감각과 철학을 일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여운을 남깁니다. 이처럼 전시는 감상의 차원을 넘어 참여와 창작, 사유의 경험까지 제공하며, 관객 스스로도 새로운 시각 언어의 주체가 되는 여정을 유도합니다.
〈케이이치 타나아미: I AM THE ORIGIN〉은 단순히 보기 좋은 팝아트 전시가 아닙니다. 이 전시는 전쟁의 기억, 무의식의 이미지, 정보의 과잉, 상징과 기호의 충돌 속에서 ‘나만의 예술 언어’를 찾고자 하는 작가의 평생 여정이자,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철학적 제안입니다. 예술이 무엇인지, 창작의 시작점은 어디인지 묻고 싶다면 지금 대림미술관에서 이 강렬한 여정을 직접 경험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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